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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읽기] 르네상스,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마키아밸리철학 2023. 7. 24. 13:07
르네상스란 무엇일까요?
많이 들어본 단어일수록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뭔지 알긴 하는데 대답하긴 어려운 그 기분...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15~16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 퍼진 대규모 사회문화운동으로 중세 스콜라철학에 대항했습니다. 특히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와 같은 도시들에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복원과 재발견이 이루어지면서 과학, 문학,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과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의 인간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인문주의적인 성향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 예술을 연구하고 찬양함으로써 고대의 지식과 미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르네상스는 미술, 문학, 음악,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작품과 발견을 낳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과 같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였고, 다이아몬드 강도계, 인쇄술, 천문학적 발견 등과 같은 과학적 혁신도 이루어졌습니다.
르네상스는 중세 시대와 현대 시대의 연결고리로서, 인간의 창조력과 능력을 믿고 존중하는 인문주의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현대 문화와 사회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시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세의 기독교적 사고방식은 인간의 삶이 신에 의해 정해집니다. 인간은 그저 죄를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 검소하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위대한 신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각에는 결점과 실수가 많아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악을 행한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자유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유 의지' 하면 곧바로 연결되는 인물, 이탈리아의 인문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청년 시절에 이미 어마어마한 학문적인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철학, 신학, 자연과학,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했습니다. 특히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유의지와 인간의 능력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단편적인 연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높은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며,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성장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자유롭게 존엄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내며,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더 높은 존엄성과 미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 신앙과도 일치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이미지로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주장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적인 인문주의적 성향과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을 결합시키며,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능력을 강조하는 철학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르네상스, 이탈리아 - 이 두가지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또 한명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군주론을 집필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입니다.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르고 산테나 카르돈니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중상층 가문에 속했으며,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의 언어와 기독교 교리, 철학, 역사 등을 학습했습니다.
29세 때인 1498년에 피렌체 공화국에서 정치적 지위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국의 고위직인 "뉴나토 및 2인 시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502년, 마키아벨리는 프란체스코 스 포바자리와 같은 귀족 주군들과 만남을 갖추었습니다. 이후에는 귀족 주군들의 뒷받침을 받아 귀족들과도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12년, 마키아벨리는 의심에 의해 권력에서 박탈되었습니다. 그는 토스카나 지방의 농촌으로 쫄딱 망한(?) 상태에서 "군주론"을 저술하였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작품은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의 책은 시대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의 접근 방식은 "마키아벨리주의"라고 알려지며, 정치학, 윤리학, 사회과학 등에서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됩니다.
마키아밸리는 1527년 6월 21일, 피렌체에서 별세하였으며, 그의 생애는 당시 이탈리아의 불안정과 분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의 삶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사후의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특히나 "군주론"은 당시의 정치적인 불안정과 분열 상태에서 유용한 지침서로 인정받았으며, 그 이후로도 다양한 정치가와 리더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적인 리더십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그리스-로마 철학의 영향을 받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학과 인문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저작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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